유예된 X값: 서동신의 방정식
The Delayed Value of the X: Dongsin Seo's Equation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사전프로그램
〈포트폴리오, 서울〉 
2024년 1월 15일

손현정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학예연구사 
Hyunjung Son
Curator, Photography Seoul Museum of Art 
 


존 버거는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만 본다. 이렇게 보는 것은 일종의 선택 행위다. 선택의 결과,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을 시야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인다.”1라고 말하며 아카데믹하게 대상을 보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제안한다. 1970년대, 당시 지배적이었던 형식주의 미술사에 던진 그의 질문으로 매체, 인종, 젠더 등 복잡하고 다양한 담론이 얽히며 새로운 이미지 해석의 가능성이 논의되기 시작 했다. 소위 근래 자주 들려오는 ‘다학제적 이미지 리터러시’의 시작이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주제는 익숙하고 해묵은 논쟁일 것이다. 허나, 여전히 정답 같은 보기의 방법들이 몸에 체득되어 역사와 신화라는 고고함 속에 지속되고 있다. 보지 않은 것을 보았음직 하게 기록하고 그 이미지 생산의 주체가 인간이냐 아니냐는 논쟁으로 확장된 지금까지도.

서동신은 사진으로 이미지를 인식하는 방법에 대해 질문한다. 그는 ‘보다’와 ‘알다’ 사이에서 언어적, 시각적 의도, 의미, 형태, 경계에 매이지 않는 것을 과제로 삼고, 이미지의 충동 및 상호 작용을 실험하며 개념으로 정의되지 않는 영역을 확장하고자 한다.2 그의 근작 〈방정식〉(2023) 시리즈는 이미지를 병치해 공간감을 없애고 평면성을 강조한 〈방정식〉, 같은 크기의 이미지를 포개어 포토샵으로 색의 추출과 변형을 통해 유화의 색-면처럼 표현된 〈불협화음〉, 적확한 비율로 포개진 선들의 반복이 착시를 일으키는 〈산술〉로 구성된다. 서동신은 이들의 작업적 방법론을 “물리적, 화학적, 인지적 방해 요소를 활용”3해 “개념적으로 쉽게 정의되지 않는 영역을 확장하고자 했다.”4고 말한다. 위 시리즈는 만들어진 방법과 결과는 다르지만 “의미, 정서, 서사를 대상으로부터 분리할 때, 보이는 것의 실체를 만날 수 있다.”5는 그의 주장을 대변한다. 이미지로 시각 경험을 공유할 때 이미지 수용자는 사유를 떠나 그 자체(실체)만을 볼 수 있을까? 한국 사진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등장해 최종 작가로 선정되며 주목받고 있는 서동신의 사진에서 정확히 어떤 것이 우리의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것일까. 감각적인 이미지와 적절한 기술로 마감된 그의 사진은 어디선가 보았듯 익숙하고, ‘보는 방법’에 대한 그의 관점 또한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질적인 이미지들이 프레임 속에 뒤섞인 서동신의 사진을 보며 우리는 저마다 미지수 X의 값을 찾는다. 몇 가지 유효한 가짓수의 답을 늘어놓으며 보는 이는 질문한다. ‘어떻게 만든 것인가요?’ ‘이것은 무엇인가요?’6서동신은 ‘어떻게’ 혹은 ‘무엇을’ 보다 지금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봐 달라 말한다. 그의 사진 앞에 선 이들은 불명확한 이미지를 보기 위해 작품 앞으로 다가간다. 복잡한 방정식의 해법 과정이 오래 걸리듯 사진 속 겹겹의 레이어에 숨겨진 형태를 하나씩 찾아가며 사진에 눈이 머무는, 즉 인식에 도달하는 시간 또한 몇 걸음만큼 늘어난다. 일정한 시간을 확보하며 보는 이의 판단을 지연시키는 것이 그가 말한 ‘쉽게 정의되지 않는 영역을 확장’하는 방법일 것이다.
현상학의 창시자라 일컬어지는 에드문트 후설은 성급하게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의 근원이 되므로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판단 정지’의 사고 과정을 에포케Epoche라고 정의하며 모든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판단 정지'가 필요하다고 전언한다.후설이 정의하는 판단 정지는 있는 그대로의 순수 존재에 이르기 위해 기존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버리고 순수한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고, 개인적 관심을 지닌 태도에서 개인성을 넘어선 순수한 보편적인 태도로의 태도 변경을 수행하는 것이다.

지각은 개인의 경험, 감정, 인지적 틀과 깊이 얽혀있다. 어떤 의미에서 ‘있는 그대로 본다’는 행위는 제시된 이미지와 보는 이의 관점이 그물망처럼 복잡하게 얽힌 시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협상이다. 서동신의 사진들은 시각적 자극에 대한 과거와 미래의 연관성으로부터 잠시 분리되는 시간적 중단과 함께 판단 또한 중지시키며 시공을 다르게 감각하도록 이끈다.이것이 우리가 그의 작업을 표현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하고 있는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도 이미지를 보지 않는 시대에 한편으로 진부하면서도 새로워 보이는 모호한 제작 방법으로 이미지에 눈이 머물게 하고, 그 시간 동안 그의 사진은 우리의 판단을 보류시켜 이미지 그 자체만을 바라보게 한다. 또한 이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며, 서동신은 참여와 인지의 시간을 유예할 뿐이다.

그의 이전 작업인 〈엔트로피 I〉(2017-2019), 〈엔트로피 II〉(2020-2022), 〈먼지털이〉(2019), 〈아래로 던지기〉(2019) 또한 〈방정식〉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만들어진 방법과 결과는 다르지만 판단의 보류라는 연쇄 위에 있다. 특히 그의 사진집 『Entropy II』(서울: 어피크프레스, 2023)에서는 이미지와 캡션을 분리하는 불편한 편집 방식으로 언어와 이미지의 상관관계를 분절시켜 인식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아선다. 역설적이게도 방대하고 직관적으로 채집된 ‘임시적’9 이미지들은 ‘엔트로피’라는 단어와 책으로 묶여 무질서에서 질서화의 방향으로 정돈된다. 마치 방정식에서 미지수 X의 값이 규칙에 따라 예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유한한 가짓수가 나오는 것처럼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의 실체도 몇 가닥의 유형화된 사슬 안에 속하는 어떤 것일 것이다.

서동신은 오랜 시간 동안 사진 매체로 이미지를 다루었기에 세련되고 ‘마감 좋은’ 사진을 만드는 능력을 체득 했으리라 짐작한다. 그의 사진은 현실의 기록이 아니라 감각의 보존 수단으로, 기술적 지지체로써 기능하고 있다. 사진에 천착한 시간과 방대한 양을 근거 삼아 사진을 형태적, 개념적으로 분류하고 규정하기보다는 그가 이미지 한 장 한 장에 제공한 유예의 시간을 이용해 이미지가 어떻게, 무엇을 그리고 왜 ‘사진’으로 우리와 대면하게 하는지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 1.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최민 엮음(서울: 열화당, 2019), 14.

    • 2.   서동신, 「Equation」, 『Equation』(서울: KT&G 상상마당, 2023), 65.

    • 3. 4. 같은 책.

    • 5.  서동신, 「〈Equation〉 작가노트」, 『보스토크』, 2023년 9월, 113.

    • 6.  “전시장에서나, 제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어떻게 만든 것인가요?’라는 질문이었어요. 왜 이미지를 보지 않고 만드는 방법에 더 관심을 두는지 궁금했습니다. 서동신, 손현정과의 대화, 2023년 9월 19일.


    • 7.    박인철, 「후설 현상학에서 자율성과 상상력: 판단중지와 상상력의 관계를 중심으로」, 『철학연구회』 제139집(2022): 116.

    • 8.   박지수는 서동신의 사진 앞에서 우리는 설단현상(어떤 사실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혀 끝에서 빙빙돌기만 할 뿐 말로 표현되지 않는 현상)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 사진을 바라보며 어떤 이름을 찾거나 부를 수 없고, 그 이름 없는 것들의 위계나 선후 관계 또한 도무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다. 『보스토크』, 2023년 9월,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