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uation
보스토크(VOSTOK) #41
2023년 09월 18일 발행
박지수
보스토크 매거진 편집장
사진 작업을 정의하는 여러 표현들 중의 하나는 이렇다. '이야기의 시각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카메라라는 도구를 활용해 이미지로 전환하는 과정이 곧 사진 작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는 사진에 담겨야 하는, 또는 사진으로 전달해야 하는 '이야기'를 전제하고 있다. 또한 시각화 과정보다 이야기를 먼저 염두에 둔다. 하지만 꽤 많은 사진 작업에서, 여러 사진가에게서 이야기보다 시각 과정이 선행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거칠게 말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카메라를 든 것이 아니라, 카메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작업의 동기가 생겨 나는 셈이다. 나도 모르게 계속 눈길이 가서, 눈동자가 반응해서 시작되는 사진 작업의 경우에는 결코 이야기가 선행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에서는 바라보고 난 후에 생겨난 결과물로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특정한 의미로 수렴되기보다는 바라본다는 것 자체, 그 바라본 것들의 목록 자체에서 다양한 의미가 확산된다. 다시 말하면, 의미가 있어서 바라본 것이 아니라 바 라보기에 의미가 생기는 것이며, 이러한 시각화 또는 시각 과정 자체를 하나의 이야기로써 따라가야 하는 셈이다. 여기서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설이나 영화처럼 기승전결의 내러티브나 서사구조를 지닌 '스토리'가 아니다. 언어 작용보다 눈의 반응으로 태어난 사진에서 이야기는 형태와 크기, 색감과 질감, 명암과 대비 등 시각으로 호환되는 요소들이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이야기는 이러한 시각적인 요소를 관찰하고 탐색하는 과정 자체이다. 똑같은 사물과 풍경을 바라봐도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진가의 관점과 태도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서동신의 작업 〈Equation〉은 시각화에 선행되는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이를 통해 그는 바라보는 과정에서 영향을 미치는 삶의 영역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고자 한다. 먼저 정해진 스토리 라인을 따른다면, 미리 알고 있는 지식에 의지한다면, 그 무엇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와 개념 등 언어에 포획된 사진은 바라보고 또 보여주는 시각 과정에서만 작동하는 이미지의 가능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동신은 자신이 지닌 사고 방식, 즉 언어의 한계 내에서 이미지를 재단하고 구속하는 일련의 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가 주로 구사하는 방식은 여러 이미지들을 충돌시키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이미지들의 우연한 배열을 작품 안에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촬영 과정에서도 구체적인 이름이나 의미, 상황 등이 파악되는 않는 장면에 초점을 맞추고, 여기에 자신의 감정이나 단상이 투영되지 않도록 물리적/심리적으로 밋밋한 거리와 시선을 유지한다. 그의 사진에서 어떠한 이 야기의 흐름이나 특별하게 고정된 의미, 선명하게 도드라진 정서 등을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서동신의 사진 앞에서 우리는 설단 현상*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 사진을 바라보며 어떤 이름을 찾거나 부를 수도 없고, 그 이름 없는 것들의 위계나 선후 관계 또한 도무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언어에서 멀리 벗어난 후 침묵이 찾아올 때, 그제서야 맨 눈으로 온전히 사진을 바라보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지 표면에 맺힌 형과 상, 명과 암, 빛과 색 그리고 겹쳐짐과 스며듦까지, 말과 앎으로 온전히 포획되지 않는 그것들을 눈으로 차근차근 더듬어 간다. 이제, 그의 작업을, 굳이 '이야기의 시각화'라는 정의를 빌려와 바꿔 표현해 본다면 이럴 것이다. '시각화의 이야기.'
*어떤 사실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혀 끝에서 빙빙 돌기만 할 뿐
말로 표현되지 않는 현상